수선화, 목련, 굳은 빵, 그리고 봄 4월 2, 2025 눈보라와 맹추위가 기승부리던 어느 3월 초 앙상한 가지뿐인 철쭉나무 밑에 꼬맹이 수선화의 잎새가 나왔다. 몇 년이나 땅속에 있던 구근이 살아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영락없이 꽃을 피울 모양이다. 몇 주 지나서 수선화가 꽃을 내더니 작년에 해거리한 목련이 진달래, 벚꽃도 피기 전에 먼저 꽃망울을 내보였다. 기후변화가 심하니 보니 꽃들도 제 나름의 질서를 새로이 정렬하는 것이리라. 어김없이 아이들은 콧물, 기침, 열과 설사에 다시 스멀거리는 독감까지 앓아가며 ‘봄’을 앓고 있다. 3월은 그런 달이다. 새로 어린이집 시작한 아기들과 부모들도 눈물 콧물 짜가며 몸살과 맘살을 하고,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도 몸살과 맘살을 이렇게 저렇게 앓는 때가 지금이다. 엄마와 떨어지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우랴. 초등학교 입학한 어린이는 학교라는 긴 터널로 첫발을 내디뎠으니 대견하고 안쓰럽다. 올해 입학한 아이들에게 ‘사이언스 키즈 2025’를 한 권씩 선물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기원한다. 부디 잘 자라거라. 눈 쌓인 작은 정원에 쏙 고개를 내민 수선화 싹을 보니 나 자신이 아이들을 탁아소에 맡기던 시절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어린아이 둘을 7시 15분까지 탁아소에 맡기고(독일은 학교, 백화점, 관공서, 병원 등등 뭐든지 아침 8시 시작)서둘러 출근하여 주차장에서 눈물을 닦으며 뛰어가서 회진을 돌던 기억이 새롭다. 첫애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 찬란하던 햇살(독일은 9월 학기)과 진한 감동이 생생하다. 누구든 처음 엄마, 아빠가 되고, 처음 유아교육 시설을 보내고, 처음 학부모가 된다. 결국 목련 나무는 풍성한 꽃을 가득하게 피웠다. 작년에 해거리하느라 꽃봉오리 하나도 맺지 않았을 때 얼마나 속을 끓였던가. 아직도 나의 수양이 부족하고 숨이 짧은 탓이리라. 작년에 큰 목련 옆에 식재한 작은 자목련이 2주 만에 고사했을 때는 기르던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바로 그 심정이었다. 올해는 목련 나무에 꽃이 크고 많다. 그 옆 그늘에 새로 자목련을 한 그루를 심었다. 작년에 실패한 경험을 되살리며 또 한 번 모험 삼아 야성 있게 생긴 녀석을 어린 자목련 한 그루를 심었다. 우리 병원에 오는 아기들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보살핀다. 결국에는 스스로가 갖고 태어난 생명력으로 자라나지만 돌봄의 손길이 없이는 꽃도 나무도 아이들은 더구나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내원하시는 부모님들이 간혹 음료나 간식거리를 사다 주신다. 참으로 감사하다. 때로는 이미 굳어진 딱딱한 방이 들어올 때도 있다. 그러면 또 어떤가. 나름 그렇게 하시는 게 모양새가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나에게는 모든 아기가 다 귀한 부모에게 태어난 이 세상 유일무이한 남의 귀하디귀한 자식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알지만 사람 사는 모양이 여러 가지이고, 이래저래 섞여 사는 게 이 세상살이의 근본이다. 그저 온정 있게 사람답게 서로를 존중하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4월로 넘어갔으니, 황사가 올 것이고 아이들은 산책, 소풍을 갈 것이고, 황사에 묻어온 온갖 병균과 진균, 바이러스, 중금속이 부유세균으로 떠다녀 아이들의 호흡기 질환을 몇 배로 많이 발생시킬 것이다. ‘물을 많이 마시게 하세요. 구강위생을 신경 써 주세요. 잠을 충분하게 재우세요….’ 부모님들에게 불러주는 나의 노래는 캐논처럼 반복될 것이다. 아, 봄이다. KakaoTalk_20250403_065913874 이것이 좋아요:좋아하기 가져오는 중... 글 내비게이션 우리가 목련을 기다리는 이유The Blue Story I, 첫번째 블루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