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ue story III 세번째 블루 스토리

8월 17, 2025
강목사댁 삼남매. 하은아인이준

HARDENING and PRUNING
굳이 번역하자면 경화, 즉 내성강화와 가지치기쯤 되겠다.
식물을 키울 때 타고난 좋은 형질을 강화시키고 약한 성질을 강하게 변형시키는 게 하드닝이다. 더 좋은, 많은 열매를 맺고, 더 크고 풍성한 꽃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게 전지, 즉 가지치기이다. 집안에 화분을 하나라도 키워 본 사람은 모두 경험하는 일, 때때로 분갈이뿐 아니라 이파리를 솎아주고 웃자란 가지를 쳐주어야 화초가 더욱 튼실하고 꽃이 더욱 풍성하다.

아이들도 다를 바 없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누고, 잘 놀아도 결국 사람의 가는 길이 교육에 달려 있으니 내성 강화와 가지치기, hardening and pruning, 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의 성향을 잘 살펴서 좋은 습관을 키워주고, 행여 나쁜 습관은 고쳐주고, 타고난 좋은 형질을 북돋아 주고, 타고 난 덜 좋은 형질은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식탐이 많으면 많이 먹어도 되는 과일, 야채를 제공하고, 고기를 싫어하면 조리 형태를 바꾸어 균형 잡힌 식단을 시도해 본다. 알레기가 있는 식품을 피하고, 편식을 차분하게 고쳐준다. 늦게 수면을 취하는 습관은 부모 자신의 수면스타일을 되돌아본다. 아이는 천진하다. 자기반성의식이 없어서 천진하다는 것이지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옳고 바르기’때문이 아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 아직 없는 것이다. 이럴 때 부모는 지고지순하게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객체로써 살피고 판단할 의무가 있다. 아이가 타고 난 유전적 성향, 즉 GEN, 의 결과로써 감기에 더 잘 걸리는 것이나 단 음식을 탐하는 것이나 동적인 놀이를 좋아하거나 호전적 성향이거나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DNA combination의 결과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사람은 환경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내 아이의 성향을 살피고 좋은 방향으로 교육을 시키면 된다. 이 닦은 것을 싫어한다고 양치를 시키지 않을 것인가? 아이가 잘 닦게 되도록 방법을 찾도록 한다. 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밤마다 오줌을 싼다면 그게 어디 아이만의 문제겠는가?

3학년 아이가 본인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느라 아침마다 학교 갈 때마다 골이 아파 병원에 들러 결석의 이유를 만든다면 이게 아이 혼자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아이가 보여주는 좋은 형질을 강화시키는 것도 부모의 관심 어린 판단이 필요하다. 공간개념이 뛰어난 아이도 있고 음감이 뛰어나 언어만큼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도 있고 기억력이 뛰어나 어른들을 놀라게 하는 아이도 있다. 적응능력이 좋아서 단체 생활을 즐기는 아이는 이미 사회지능이 높은 것이다. 미각이 발달해서 음식을 구별하고, 즉 먹고 싶은 음식을 해달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운동 능력이 뛰어나서 공을 잘 차는 아이도 있고, 공 따위는 싫고 오로지 씽씽카에 전력하는 아이도 있다. 아침마다 자기가 고른 ‘딴에는 예쁜 옷’만 입고자 하는 아이도 있다. 이 모든 개성의 표현들이 개발의 여지가 크다고 본다.

매일 관찰되는 사소한 형질의 발현을 부모가 알아야 하고, 좋지 않은 것은 가지를 치듯 고쳐 주고, 좋은 것은 북돋우어 주자. 형제가 있는 아이들은 이 사실만으로도, 즉 ‘부모를 공유’하는 이 환경만으로도 hardening과 pruning 이 절반은 이루어진다. 경쟁하고 다투고 양보하고 보살피고 책임지고 때리고 밀고 뺏고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부모를 공유한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내리사랑도 있고 성향적으로 맞는 아이를 편애할 수도 있으나, 어쩔 수 없이 비교대상 없는 하나에 쏟아지는 사랑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어, 결국 부모도 같이 성장한다. 처음부터 완성된 부모는 없다. 자식이 자라는 만큼 부모도 자란다.(유학시절 애를 셋씩이나 낳아 기른 나와 우리 무쪼삼형제의 아버지 유박사님의 솔직한 고백이다. 독일은 교사, 의사를 선두로 중산층에서 다산하는 경향이 있었다. 내선배, 동료들이 대부분 3.4,5 이상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이건 옛날이야기이고, 요즘은 거기도 출산율이 2 미만으로 떨어졌다. 막내의 한탄, 엄마, 내 동생을 낳아준 다음에 귀국하지 그랬어, 여자동생으로…) 요즘은 한 자녀 가정이 대세인데 어린이집, 유치원 생활이 형제의 대체역할을 조금은 하는 것 같다.

여담인데 ‘애보다 개가 더 많이’, 아니면 ‘애만큼 개가 많은 시대에 마주치는 특별한 장면이 많다. 토끼처럼 (실은 호랑이) 늘 다니는 같은 길을 산책하다 보니까 개주인보다 개를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호수 공원에 수피아 앞에 갈대밭 속으로 호수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가 있다. 다리밑 숭어들 틈에 거북이가 한 마리 살길래 보러 설렁설렁 들어가는데 지긋한 남자 음성이 들린다. “보여? 아빠가 보여 줄게. 아니 앞에 있잖아. 옆에 보지 말고, 잘 봐봐. 봤니? 난 보이는데.” 아마 아빠가 간절하게 무얼 보여주는데 ‘아이’가 딴청을 하는가 보다 생각하고, (에고, 새끼들은 모두 같구나, 내 새끼나 남의 새끼나…) 기척을 줄이고 모퉁이를 돌았더니 강아지/개를 한 마리 안아 높이 들고 모여든 숭어 떼를 보여주는 ‘아빠’가 보인다. 행여 방해할까 봐 슬쩍 비켜서 지나갔다. 한참 가다가 뒤돌아 보니까 ‘아빠’는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30도 삼복더위에 품에 앉아 산책을 시키며 저만치 가신다.
나의 생각은, 사람은 사랑을 받을 때만큼 사랑을 줄 때 행복하구나.

(무쪼삼형제네 가족 5명은 개사랑이 차고 넘치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귀국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개를 하나 데려온 것이다. 독일에서는 월세 살면 조건이 안될 때가 많다. 또 애 셋에 당직 근무에 개는 무리였다.) 진돗개도 키워봤고, 라브라도 레트리버를 두 마리 키웠었다. 온 식구가 애지 중지. 사랑을 쏟을 때 확실하고 사랑을 받으면 확실하게 돼 사랑을 하는 게 개라는 동물이라서 너도 나도 개를 기르는 것 같다. 하하. 애는, ‘ㄱ’이 ‘ㅇ’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아이는 변수가 많은 고유인격개체로써 심지어는 사랑을 요구하거나 거부하고 지맘대로 선택을 하고 커서는 따지고 덤벼들고 바람과는 전혀 다른 짓거리를 하기도 한다. 자음 하나가 모음 하나로 바뀌었을 뿐인데. 애들은 안아주면 내려놓으라고 할 때도 있고, 걸으라고 하면 안으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ㅎㅎ, 이런 변수들이 무한잠재, 그게 바로 우리 아이들의 매력이라고 하면 궤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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