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서 슈퍼 콩 나고, 팥 심은 데서 울트라 팥 난다.

9월 20, 2018

사람의 종이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귀 두 개 달린 얼굴을 갖게 되어있으나, 정말 똑같이 생긴 둘은 지구상에도 드문 일이다. 일란성쌍둥이도 유전자상 미세한 차이가 있다. 신생아실에 누워 있는 아기들 보면 조그마한 코하며 입 모양이 전부 따로따로이요, 조리원 아기들은 더욱 따로따로이다. 하룻볕 한나절에 부모의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리라. 더욱 조화롭게, 더욱 사랑스럽게.

비단 외모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기들 기질을 살펴보아도 엄마·아빠의 유전자배합으로 새로운 combination이 나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기란 엄마나 아빠를 조그맣게 조작한 생명체가 아니요, 그 어느 한쪽의 작품도 아니요, 더더구나 부모의 짝퉁이 아니고, 이 세상 유일무이한 대체 불가결한 단 하나의 인격체인 것이다.

아기의 개성이 부모의 선입견을 뛰어넘는 게 일반적이다. 먹는 것도 노는 것도 좋아하는 장난감도 아빠·엄마와 다를 수 있다. 사람이 기억하는 가장 어린 자화상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평균 4, 5세이니 결국 어린 자식의 하는 짓거리가 나를 닮은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는 법이다.

평균의 범주는 넓고 개성의 경계는 바닷가 모래알 수만큼 많다. 평균은 절반 이상이 해당할 때 하는 말, 즉 아빠·엄마가 키가 크면 아기도 좀 크겠지만 작은 아기도 나올 수 있고, 아빠·엄마가 쌍꺼풀이 없으면 아기도 없겠으나, 조부모까지 살펴서 있는 분이 계시면 아기도 돌연변이처럼 쌍꺼풀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키가 남보다 월등히 크다거나 쌍꺼풀이 있거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도 있지 않을까? 사회적 압박, 외모와 젊음과 부, beauty and youth and richness를 무의식적으로 가정교육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말은 늦은듯하나 온순하여 다른 친구들과 조화로운 – 친화력과 사회성이 뛰어난 – 아기도 있고, 구성물 만들기엔 뛰어나나 색 감각이 보통인 – 조형력과 창의력 우수한 – 아기도 있고, Let it go를 Elsa보다 더 잘 부른다거나 – 음악적 소질 풍부한- , 기저귀 가리기를 거부하는 아기도 있다.
그러면서 자기 옷 스스로 골라 입는 아기도 있고, 엄지손가락 빨면서 아장아장 다리로 공차는 시늉하는 아기도 있고, 아빠·엄마가 잊어버리고 지키지 못한 약속을 시시때때로 상기시키는 세 살짜리도 있다, 민망하게도. 이렇게 아기들은 제각각 다른 개성의 색깔로 빛나는 별들과 같다.

슈퍼 콩이 나오면 좋을 것이기에 성의를 다해 키우고, 울트라 팥이 등장하면 신날 것이기에 항시 보살피고 돌보는 것이리라. 그러나 아니면 또 어떤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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