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가 TV를 너무 많이 본다?

11월 17, 2018

뽀로로를 모를 순 없다. 우리 아기들.
아기들은 왜 뽀로로에 열광할까? 한돌 넘고 나면 걸어 다니고, 걸어 다니면서 활동 범위가 넓어지며 경험의 폭이 깊어지고, 소위 자아 형성 시기에 도달하며 두 살도 되기 전에 뽀로로에 푸욱 빠지게 되는 아기들이 많다. 그뿐이랴, 푸우, 콩순이를 지나 상어 가족, 온갖 카봇들, 소피아 공주의 마법에 빠지고, 공룡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대여섯 살이 되기 전에 디즈니 가족이 되어버린다. 그 외 유튜브가 제공하는 수많은 영상들… 집짓기, 슈퍼마켓, 옷 입히기, 동물관찰, 우주 탐험, 로봇, 노래와 율동 등 가히 모든 분야에 어린이를 겨냥한 스폿들이 셀 수 없이 제공된다.
아이들 중 뽀로로를 수백 번 보는 아기, 공룡을 영어로만 보는 아기, 상어 가족을 안 틀면 밥을 안 먹는 아기도 있다. 콩순이를 틀면 울다가도 그치고 겨울왕국의 엘사 옷만 몇 달째 입는 아기도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과연 이것은 ‘문제’일까?

부모님들의 우려는 아기가 두세 시간 동안을 ‘빠져서, 불러도 모르고’ 몰두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눈도 나빠질 것 같고 배도 고플 것 같은데 당장 못 보게 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고 한다. TV에 관심이 없어 십 분도 안 보고 이리저리 다른 놀이를 하는 아기도 물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성의 문제일 뿐 장단점, 혹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메스미디어는 단순히 나쁘거나 좋거나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 AI 세상에 살고 있고,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3D printing을 넘어, 4D printing이 시도되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이미 화성 탐사를 준비하고 있다. 과학의 눈부신 그야말로 숨 가뿐 발전이 우리의 생활 전반에 반영되고 있다. TV라는 매개체는 기계일 뿐, 그것을 선별적으로 이용하여 간접적 경험의 폭을 확대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90년대 초, 컴퓨터는 인터넷 연결이 안 되어 있었고, 그때는 그런 시설 자체가 없었고, 독일대학병원 병동 과마다 그나마 한 대씩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 국민 90% 이상이 소유하는 휴대폰 한 대의 성능이 아마 그때 대학병원 전체의 컴퓨터를 합친 것보다 수천 배 높은 성능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뇌는 무한정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되, 너무 어려서 어떤 것을 수용할지 선별능력이 없으니 부모가 미리 보고 살피고 골라서 보게 하면 좋지 않나 싶다. 어른의 감각에는 뽀로로를 수십번 봤는데도 넋을 잃고 또 보는 아이가 황당할 수 있으나, 아이는 그것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메마른 식물이 물을 빨아 삼키듯 흡수하는 것이다. 모든 공룡의 이름을 줄줄 꾀고, 공룡 인형을 어디든지 끌어안고 다니고, – 물론 병윈에도 가지고 와서는 공룡처럼 소리를 질러댄다. – 선호하는 것에 충실한 것일 뿐, 어른들도 실은 자세히 살펴보면 비슷하게 천착하는 것들이 있다. 더하고 덜할 뿐, 누구나 특별히 본질적으로 쏠리는 것이 있다.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선별의 능력이요, 그것은 가정에서 배워야 하는 많은 교육 중의 하나인 것 같다. 현대의 부모는 실은 슈퍼 맘, 슈퍼 파파 일수밖에 없는 게, 급변하는 세상에 신자도 맞춰 적응해야 하고 더 빨리 변할 게 분명한 바깥세상에 우리 아이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보면 부모 노릇이 쉬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복잡해진다. 다행스럽게도 어린이 프로그램이 아이들 나이에 맞게 즉 스토리 전개, 배경, 언어, 음악, 색깔, 인물의 조합 등을 대개 아이들에게 맞게 구성되는 것 같다. 부모가 선별해서 같이 보는 것도 방법이고, 아이가 선택하게 해서, 특별히 유해한 것이 아닌한 보게 하는 것도 교육상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부모님의 작은 휴대폰을 너무 오래 보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 시력발전에 나쁠지 모르니, 차라리 태블릿을 주던가, TV 앞에 적당한 거리를 띈 자리를 정해주고, 약속된 시간만큼 보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평균 하루 한두 시간을 시청한다. 미국이나 유럽 아이들은 조금 더 많이 시청한다는 통계가 있다. 무조건 TV는 나쁘다, 혹 무조건 TV 앞에 앉혀놓는다, 두 가지가 격변하는 시대에 선별적으로 간접경험, 간접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 아이가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 갈 수도 있고, 탄자니아 세렝게티에 사자 보호대를 만들 수도 있고, 유아교육의 선구가 될 수도 있고, 사막에 급수시설설비를 할 수도 있고, 월드컵에 결승에 진출한 첫 한국인 선수가 될 수도 있고, 수학을 못 하는 초등생을 위해 헌신하는 교사가 될 수도 있고, 앞으로 닥칠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획기적 농사법을 개발할 수도 있고, 노인병을 해결하는 유전자를 찾아낼 수도 있고, 진짜 행복 바이러스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살아있는 동안 기쁜 웃음을 선사하는 연예인, 보기만 해도 맘이 편안해지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춤으로써 몸을 움직이는 기쁨을 보여주어 행복을 나누기도 하고, 숨어있는 몸의 치유력을 알아내게 도와주는 몸 전문가, 음악으로 맘을 달래주는 예술가, 오감을 만족시키는 뛰어난 요리가, 세상을 놀라게 할 탐험가, 가사를 도와주는 로봇 발명가가 될 수 도 있다.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게 아이들이다.

알아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충족한 삶을 위해 간접, 직접 경험을 마다하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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