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기가지니! (미디어 교육)

4월 19, 2020

디지털 세상, 디지털 인프라, 디지털 잡, 디지털 정의.
코로나라는 본래 약성이던 바이러스의 변종출현으로 21세기의 지구가 흔들리고 있다. 더불어 파생된 문제 중 하나는 사회적 거리 두기, 본질적 예방책의 하나로써 온 지구인이 싫든 좋든 지키는 사회적 약속, 그중의 하나가 놀이방, 어린이집, 학교의 휴업. 해결책으로 온라인 수업이 진행 중. 많은 준비와 시행착오를 거쳐 무대에 올려지기는 한 모양이다. 마치 카타스트로프, SF영화에서 나오듯 학교가는 대신 집에 앉아 pc로 수업하는 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학교라는 매개체가 한 사회,한 세상의 정상성의 상징임을 실감한다.)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청소년, 청년은 그렇다치고, 과연 우리 아기들은 언제 어떻게 어떤 전자미디어를 접하게 하여야 할까를 한번 고민해본다.

‘우리 애는 TV는 무조건 안 된다, 하여튼 나쁘다, 어쨌든 아니다’라는 교육관을 갖고 소신껏 지키시는 부모님도 계시고, (심지어는 TV를 없애신 부모님도 있다.) 한편으로는 엄마 아빠 할머니 휴대폰 세 개를 번갈아 차지하고, 유튜브나 자기 동영상을 반복해 보게 허락하는 부모님도 계시고, (안주면 징징거려서) 눈만 뜨면 백색소음 수준으로 켜진 TV에서 어린이방송과 온갖 성인방송을 거름없이 보다 말다하게 하는 부모님도 계시다. 과연 아기는 언제부터 얼마나 TV라는 마술 박스,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요술 장난감을 갖고 놀아야 할까? 놀아도 될까? (수저질도 못 하는 손으로, 자기 손보다 더 큰 휴대폰 조작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아기도 가끔 본다.)

2017년 출판된 독일어판 소아·청소년과책에 나온 미디어 노출에 관한 추천이다. (전부 ‘만’ 나이 기준)
3세 미만 노출시키지 않는다.
3세~5세 하루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5세~7세 1주에 5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7세~12세 1주에 1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매우 이상적인 추천임이 틀림없다. 재태기간-엄마의 뱃속에 있는 기간-을 포함한 첫 1000일 동안이 일생의 신체적, 정신적, 지적 발달에 초석이며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밝혀진바, 아기가 노출되는 환경을 신중하게 고르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생각할 것은 위 명저의 편집자들이 60년대에 태어나 (나를 포함) 튜링을 비롯한 천재들의 노력으로 퍼스널 컴퓨터가 탄생한 80, 9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삼,사십대가 되어서야 인터넷이라는, 지구를 뒤흔든 디지털 혁명에 휘말린 세대란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아기들, 어린이들, 청소년을 보라. WWW, World Wide Web을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무의식으로 들이마시는 세대이다. 나와 위의 세 저자들이 어린이였을 때 달에 사람이 처음으로 착륙했다. 그러나 우리의 어린이들은 화성 탐사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디지털 미디어가 사람이 가기 힘든 사파리의 사자를 보여주고 성인용 멜로 드라마를 방영하고 월드컵 축구 시합을 중계하는, 고전적 기능을 주로 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인터넷 출현과 보급에 힘입어 끝나 간다. 디지털 메스미디어는 가까이-넓어진 세상에서 간접적 경험을 가능케 하고, 배움의 장을 여는 플랫폼이 되었다. 이미 인공지능 AI의 세상이다. 딥러닝의 알파고와 이세돌이라는 천재 간의 대국 결과는 수년 전 이미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사실 나는 TV를 켤 줄 모른다. 본래 나기를 기계치에 길치이니, 아날로그건 디지털이건 간신히 그저 휴대폰과 pc를 사용할 뿐, 세련된 기능을 멋있게 종횡무진하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 아기들이 즐겨본다는 뽀로로, 타요 등등을 한번 보아야겠기에 류 박사에게 틀어달래서 집중적으로 감상했다. (90년대에 우리 아이들 1, 3, 5살의 셋을 키울 때는 ‘뢰벤찬’이라는 복합 어린이 방송을 일요일마다 다섯이 앉아서 19인치 테레비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족의 절대적 가족 프로는 ‘엔터프라이즈’라는 SF였다. 역시 애들은 약자인지라,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프로라서 틀었으므로 옆에서 열심히 같이 봤을 것이다. 물론 ‘라이언 킹’은 절대 선 수준의 작품으로 수백 번도 더 DVD로 봤을것이고, 하쿠나마타타라는 노래를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야했다. 가족의 공유 기억 상자에 확실히 자리잡은 것들. 교육상 결코 해악을 끼친 것 같진 않다.) 아기가 24개월이 지나면 언어가 급속히 발달하면서 호기심의 영역이 확장되고 추상의 개념이 생긴다. 그때까지는 TV라던지 영상물에 관심 없던 아기들도 뽀로로를 보면 집중도 하고 음악이 나오면 저절로 몸을 흔든다. 언어와 음악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원시적 본태적 능력이란 것이 내 생각이다. 알록달록모자 쓴 펭귄 2분,  뽀로로, 두세 번 반복, 모르는 장소에서 같은 음악이 나오면 아기는 관심을 보이고 반응을 한다. 아기마다 차이는 있으나 36개월 되어서는 미디어에 욕구도 생기고 선호도가 보이고 TV뿐 아니라 스마트폰에 관해서도 관심이 확대된다. 도대체 엄마 아빠는 왜 한 손엔 늘 저걸 들고 있을까? 한참씩 쏘아보고 손가락으로 무얼 할까?…. 아기는 조금 더 지나면 자기 맘대로 드레그해서 유튜브를 찾고 몰두해서 스마트폰을 독점하려는 어이없는 횡포를 일으킨다. 분쟁의 발생. 분명한 건 상벌의 수단으로써의 스마트폰 허용은 교육상 좋지 않다. 허용원칙은 모든 양육자들이 단호하게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효과적이다. 원칙없이 임의적으로 제한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커질 뿐이다. 할머니와 영상 통화한다고 켜달래서 잘 안 되는 말을 제법 지껄인다. 커가면서 더욱 치열해지는 작은 디지털 분쟁 현장인 가정. 초등학교 입학선물로 스마트폰이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는 소식도 있다.
위의 소아·청소년과책의 추천을 어떻게 주 12시간을 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방마다 CCTV 설치? 적은 용량과 간소화된 기능만 탑재한 학동기용 스마트폰? 유해한 기능이 차단된 스마트폰? 엄마가 인터넷 관리자로 전락한 상황? 군대처럼 하루 두시간만 휴대폰 사용? 어떻게 해야 마른 솜처럼 축축한 정보를 빨아들이는 우리 아이들의 뇌가 해를 입지 않을까? 아이와 시간제한 약속은 어떨까?
게임 하고 싶어 하는 열 살짜리 아이와의 실랑이는 어떤가? 감질나게 매일 20분 놀게 하는 것 보다 몰아서 주말에 두시간이 더 만족감이 준다고 부지런한 미국 아동 심리학자가 발표한 걸 읽었다. 말인즉 게임 중간에 타임아웃하면 불만족만 쌓이니, 차라리 게임을 한판 끝내서 만족하는 게 절제의 측면에서는 효과 있다는 해석이겠다. (사람은 게임하는 동물, 축구나 농구만 게임이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그야말로 World Wide Web에 살고 있다. 말도 하기 전에, 글을 배우기 전에 아이들이 인터넷에 노출되고 전자미디어의 홍수에 빠진다. 비유하자면, 정보의 홍수, data streaming에 빠지더라도 시원하게 즐겁게 물놀이를 하다가 여유 있게, 너끈히 살아나오도록 수영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선별하는 법을 가르치고 절제하는 원칙을 몸소 실천하고 비평적 태도를 길러주어야겠다. 접하지 않게 하는 것이 보호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면서 비평적으로 접하게 하는 게 교육인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아기들이 많다. 형상화된 동물이나 식물, 이야기가 펼쳐지는 작은 세상에 열려 있다는 사실, 언어형성에도 절대적으로 좋은 효과가 있으며, 아기들의 거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증명하는 사실이라고 믿는다. 자기 전에 읽는 책, 자기 전에 엄마가 읽어주는 책,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 정서적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십분’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3D로 겨울왕국을 보고, 카보트를 만들고, 공룡의 세계로 들어가 보았지만, 그래도 또 좋은 것은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인 것이다. (어린이용 태블릿에 수많은 동화가 수록되어 있다고 들었다. e-book이 대세이니, 굳이 나무도 많이 줄어들고 있는 세상에, 자리 차지하는 동화전집이 과연 필요할까 싶다. 중요한건 엄마 아빠가 읽어주거나, 같이 읽는다는 사실이다. 읽어주는 걸 들음으로써 문어 교육이 이루어진다. 이 다음에 논술 배우러 학원 안 가도 된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머지않아 로봇이 노동의 많은 부분을 처리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사람의 ‘노동하는 시간’이 줄어들테니, 자신의 잉여시간을 즉, 자유시간을 의미 있게 구성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빅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반드시 키워주어야 할 정서적 도구, 걸음마처럼, 이를 닦고 손을 씻는 위생개념처럼 확실하게 배워야 하는 것들이다. VR은 이미 축구나 요가, 수영처럼 현실화되어 있는 오락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균형 잡힌 신체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아이들의 양질의 성장이 보장된다. 그래서 전자미디어 노출에 대해 고민할 때는 아이들의 ‘몸의 발산’ 즉 체육활동을 같이 고민해야겠다.
Big Data라는 것은 실은 생명이 없는 것, 그러나 그 성격상 현대인의 사고와 생활을 공기처럼 좌지우지한다. 굳이 집어서 말하자면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의 일상이 GAFA라는 초대형 디지털 기업의 충실한 소비고객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노예는 되지 말아야겠다) 자기 신체를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야 자기 맘을 조절하기 쉽다. 반성적 사고는 건강한 신체에서 가능하다. 세상이 열려 있을수록 비평적 접근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나쁜 게 아니라 `스마트폰 만 보는 게` 문제가 아닐까. 아이들은 망아지 같다. 뛰어놀아야 한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 야외활동을 많이 시키자. 춤, 운동, 미술, 음악 등으로 균형을 잡아준다면, 설사 말을 배우기 시작한 우리 아기가 ‘엄마, 아빠’ 다음에 ‘기가지니’를 불러도 좋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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