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걸은 안아파

10월 18, 2018

 요즘 독감 예방 접종시즌이라 분주하다. 생후 6개월부터 맞을 자격이 있으니 어마어마한 숫자의 아기들이, 말하자면 뒤집는 아기들부터 접종을 권장 받는다. 그런데 이게 좀 따갑다. 얼떨결에 기분 좋게 맞고 가는 아기들도 많지만, 주사라는 공포를 극복하기는 만만치 않다. 하긴 덩치가 산만 한 아빠도 갓난쟁이 딸이 주사 맞는 걸 잡아주기는커녕, 지켜보지도 못하고 아예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모든 것은 개성의 문제.

 접종하러 올 때 엄마, 아빠가 아기에게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큰 병을 예방하기 위해 꼭 필요하니까 하는 거고, 엄마나 아빠 혹은 할머니가 곁에서 지켜주니까, 잠깐하고 금방 지나가니까, 즉 ‘우리 같이 용감하게’하는 거라고 아기 눈높이에서 설명하는 게 좋다. 아기가 비록 ‘지금’은 못 알아들어도 ‘머지않아’ 알아듣게 된다. 느낌으로 더 많이 이해하는 게 아이들이다. 아이는 직감적으로 이해한 사실을 우리 어른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도 많다.

 겁이 많은 아이들이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말에 울고 발버둥 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주사는 아픔인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인지발달의 결과이니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아픔은 누구에게나 피하고 싶은 것이다. 유난히 주사를 거부하여 병원을 흔들어 놓는 정열파들도 늘 있기 마련이요, Take it easy 하며 cool kiz인 아이들도 있다. 모두가 개성의 차이일 뿐, 우열의 문제는 아니다. 조심스러운 아기도 있고 대범한 성격도 있다. 단지 예방접종이 여전히 ‘주사’라는 기구를 통해서 실행되는 현대의학 수준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일 뿐이다.

 독감 접종을 하러 온 아기- 우리 예서 – 늘 수줍고 가냘프고 겁많은 아기, 귀여운 캐릭터 옷을 입었다. 번개걸, 번개맨의 여아 변신용 핑크 망토, pinky thunder, 핑크 타이즈, 핑크 운동화.
주사를 보자 겁이 나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엄마가 끌어안고
‘하나,둘,셋! 어, 다했네!’
스티커를 붙였다. 순간 꽉 감았던 눈 뜨더니 예서가 하는 말,
‘엄마, 번개걸은 안 아파!’
‘그거 봐, 예서야, 선생님이 금세 안 아프게 놔주셨지?’
어른에게는 어른의 방법이 있고, 아이에게는 아이의 방법이 있다. 아이는 아이의 작은 아픔을, 어른은 어른의 복잡한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 이때 서로 격려하고 존중할 일이다.

아이 키우고 살림하고 혹은 직장 다니고 가정 꾸리고 부모 돌보며 ‘삶의 중심’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엄마에게 ‘번개걸 핑크 망토’ 하나씩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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