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수료식 (2019.08.08.목.임시휴진)

7월 14, 2019

2019년 8월 8일에 휴진하는 이유는 둘째 아들의 신병수료식이라 화천에 가기 위함이다. 입영 당일에는 아버지 혼자 대동했었다. 그러나 신병수료식에는 아버지와 엄마가 같이 가서 무더위에 5주간 훈련을 무사히 끝낸 아이를 독려해주고, 자대배치 후 앞으로 남은 군생활을 잘 보낼수 있도록 용기를 주어야 할 것 같아, 환자들이 불편할것을 알면서도 휴진을 결정했다. 유학 중에 들어와 입대했기에 아무래도 어색함이 있을터인지라, 글뿐만 아니라 말로 또 한번 격려해주고, 보듬어 주어야 할것 같다. (IT 강국답게 입대 후 며칠 지나면 인터넷으로 훈련병 사진까지 볼 수 있고 편지도 쓸 수 있다… 엄마, 걱정마세요, 전 잘 있어요, 동료들이 귀여워요 ㅋ, 저한테 ‘덕형’이라고 불러요… 그 이름도 빛나는 칠성부대) 이 자리를 빌어 부모님들의 양해를 구한다.

지난 2016년 말 겨울 11월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막내아들, 즉 셋째가 삼형제중 제일 먼저 입대했는데, 입영당일에는 아버지 혼자 논산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왔다. 신병수료식에는 엄마가 가야 할것 같아 휴진하고 아이를 보러 갔다왔다. 그 날은 쨍소리나게 춥기도 하였지만, 눈이 어찌나 많이 쏟아지던지… 군살이 쏙 빠진 애가 군복을 입고 해맑게 웃는데, 눈발은 날리고,어찌나 반갑던지, 아이고 철부지가 사람꼴이 나네….. (이번에 전역한 선배로써 ‘짠지’헝아한테 많은 실제적 충고를 해준 모양이다.)

사람은 때론,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한다는게 우리 세 아들 아버지, 유근춘 박사와 나의 생각이다. 우리 부모도 우리를 책임지지 않았던가. 우리 자신도 사회적 개체로써, 우리 부모의 자식으로 한국이라는 국가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우리 세 아이들은 우연히 부모가 독일 유학중에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양 부모가 한국인이었고, 이에 독일어뿐 아니라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며, 본인들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자랐고, 귀국 후에도 한국에서 수 년간 학교를 다니며 한국의 사회문화를 온전히 체득하였다. 독일이라는 유럽의 사회문화만큼 한국이라는 동양의 사회문화를 적나라하게, 말 그대로 온몸의 세포마디마디로 ‘아는’ 것이다. 두 문화권 모두가 똑같이 ‘편안한 집’이라고 할까. 배추김치, 된장국, 짬짜면, 치킨, 생선회, 흑빵, 슈바인학쎄, 아이스바인, 쏘세지, 흑맥주, 사우어크라우트, 카르토펠…. 우리 아들들에겐 이 모두가 말하자면 ‘집밥’인 것이다. 차롓상을 차리고 제주를 올릴줄 알며, 카니발을 즐기고 빠른 자동차를 부러워한다. 한국은 한국대로 ‘참 좋고’, ‘어이없이 복잡하며’, 독일은 독일대로 ‘참 좋고’, ‘짜증나게 복잡한’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 완벽한 가정도 없고 완벽한 체재도 없다. 애초에 완벽이란 불가능하다는 가정하에 존재하는 것이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아들들은 한국의 국적을 가졌으니 군대를 가는 것이다. 한국은 분단국이요, 그것 또한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닐지나, ‘그렇게 된 상황’ 안에서 우리가 태어났다. 그래서 책임을 지는 것뿐이다. 국가라는 울타리, ‘우리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울타리, 그 나라의 언어로 소통하고, 세금을 내고, 투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울타리가 건재하게 유지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느껴볼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은 안다.
나는 1980년에 유학을 갔으니 당시 독일도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된 국가였기에 판이하게 달랐던 사회분위기를 분명히 기억한다. 1995년쯤으로 기억되는데, 퇴근하며 아이들을 탁아소에서 찾아오는데 앞에 가는 빨간 차가 한국차 포니였다. ‘얘들아, 저거 한국차다. 따라가자!’ 너무 반가워서 잠깐 뒤를 쫒아가다가 집으로 왔던 일화가 생각난다. 현대차였었나, 하여간 빨간색 포니였다. 1980년대에는 독일의 경제적 부흥시대라 모든 것이 풍부했다. 가끔 친절한 독일인은 묻기도 했다. 너 남한서 왔니, 북한서 왔니. 너네 공식국어가 일본어니, 중국어니, 너네도 수도물 나오니….
재능있는 개개인의 집단도 그 집단을 단체로써 규명하고 균형과 질서를 유지해야 개개인이 평안 속에 성장할 수 있다. 작게는 가정이 그렇고 크게는 국가가 그런 것 같다. 정치적 성향이나 소속집단의 고유 행태, 특정 개인의 선민의식이 현실성을 잃을 때, 마치 연못의 녹조처럼 겉만 번드르르한, 유독한 푸르름이다. 책임에는 희생이 따르고, 의무가 주어지고, 권리가 수반된다. 희생이 동반되지 않은 권리는 비열하며, 의무가 행해지지 않는 단체는, 그것이 가정이건 특정단체건 국가건, 생명이 적고 수명이 짧다.

내년에도 또 한번의 임시 휴진이 예상된다. 가을 즈음이 아닐까싶다. 내년 봄, 공부가 끝나는 첫째 아들이 입대할 것이다. 그때의 양해를 미리 구한다. 입영 당일에는 못갈지라도 신병수료식에는 엄마가 가봐야 할 것 같다.

까까머리 훈련병 아이의 사진을 보니 맘이 움직여 지나치게 사적인 글을 쓰게 되었음을 사과드린다.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