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ue Story X:열번째 블루 스토리, 대추나무가 해걸이를 했다

10월 11, 2026

나무들이 가끔 해걸이를 한다. 목련나무도 라일락도 심지어 산수유,배롱나무도 해걸이를 한다. 올해 대추나무가 차례가 되었는지 해걸이를 했다. 단 한개의 대추도 열리지 않았다. 수년전 대추가 꽤 열렸을 때는 차례상에도 올렸던 적도 있는데. 나무도 쉬어간다.

마음의 타래가 꼬여있는 서준이가 오랫만에 왔다.
“약을 좀 싸게 주세요.”
이름을 부르자마자 튀어 들어와서 진찰의자에 앉더니 대뜸 말한다.”약을 좀 싸게 주세요.”
맥락의 이해니 이런 것은 찬찬히 나중에 할 일이고, 문장을 말한것이 신통해서,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응, 알겠어요.”
그랬더니 서준은 또 한번 정색을 하고 말한다.
“약을 좀 싸게 주세요.” 나는 또 똑같이 말한다.
“응, 알겠어요.약을 싸게 줄께요.” 기분이 좋아졌는지 평소에는 손으로 막고 입을 꽉 다물어서 귀도 입도 진찰이 어려웠는데 그 날은 순순히 진찰을 받고 비타민도 두개 집어들고 인사까지 하고 나갔다.
(‘약을 쎄게 주세요’,를 말하고 싶었던건지,엄마랑 시장가서 뭘 살 때, ‘싸게 주세요’를 약에도 갇다 부친건지, 그냥 시장놀이의 연장선상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단단어만 말하던 아이가 문장을 말했으니 내마음은 그저 흐뭇했다.)

마음타래가 뒤죽박죽 엉켜있는 아이들이 많이 온다.
대화를 하다 보면 두서 없고 맥락도 없고 의도의 파악이 안되고 횡설수설 시간,장소,상황이 뒤섞여 있는데 나름 강조하고 싶은 ‘바로 그 point 점 하나’가 있다. 단지 우리가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엉킨 타래를 풀지 못할뿐이다. 풀기는커녕 그 영혼의 심연, 그 고독을 짐작도 못하는 것이다. (근래 읽은 몇권의 책 중 김현아선생의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가 깊은 공명을 남겼다. 마음타래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내환자아기들을 생각하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안간힘을 쓰는 게 사람의 일생이다. 태어난 순간 숨을 들이 쉴 때부터 죽는 순간 숨을 내 쉴 때까지 안간힘을 쓰면서 넘어지고 깨지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아기가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가 청년이 되고 성년이 된다. 처음에 뒤집기를 할 때, 손에 먹을 걸 잡고 아직 치아도 나지 않은 입에 넣고 스스로 먹을 때,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때, 달리기를 배우고 자전거를 타고, 공을 찰 때, 전부 온 힘을 다 해야 성공한다. 하물며 말을 배울 때, ‘아니야’ 소리를 처음 내지를 때는 바야흐로 사람꼴이 제대로 나기 시작한다. 계속 넘어지고 빗나가고 흘리고 다쳐도 언제나 긍정적으로 지지해주는 부모가 있으면 끝내는 뒤집고 되집고 일어서고 걷고 뛰고 젓가락질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공을 차고 다쳐서 울고 회복하고 또 달릴수 있다. 아이를 둘러 싼 사람들의 사랑과 긍정적 관심, 능력비교하지 않는, 폄훼없는 사회분위기,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사람마음의 회복 탄력성, 마음의 면역력 resilience 을 키워주는 것 같다.
You are good enough.
Du bist gut genug.
염주를 굴리듯 아이들에게 말해줄 일이다.

산책을 즐기다 보니 자주 같은 길을 가지만 관찰되는 것들이 다를 때가 많다.
햇살 따스한 가을 아침, 뱅크에 젊은 엄마가 아기를 품에 안고 뭔가를 먹이고 있었다. 아기가 어린 걸로 보아 분유라고 짐작했다. 조금 떨어진 반대 방향에서 역시 젊은 여자가 개 한마리를 끌고 오고 있었다. 나 역시 작은 소리도 전부 들릴만큼 충분히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가 있었다. “응, 왜, 너 애기 구경하고 싶어? 가 볼까?”

한번 되돌아 보고 싶었으나 그만두고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왔다. 판단하지 말 일이다. …애기엄마가 마침 심심하던차 자기애기를 구경하러 온 개를 반가워 할 수도 있지 않나…아, 요새는 개한테 애를 구경시키는구나….애가 워낙 귀하니까. 개를 매우 좋아하는 우리 다섯식구, 이 이야기를 들은 유박사님의 분석은 그랬다. Complicity. 복잡성은 세계의 본질.

햇살은 따스하고 그늘은 시원하다.
이 아름다운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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